칼럼

알렉스 룽구의 인사이트를 나눕니다.

우리가 정말 '완벽주의'라서 행동하지 않는 걸까?

하이어셀프(Higher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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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말 완벽주의라서 행동하지 않는 걸까?  

창조에 어려움을 겪는 크리에이터들을 위한 팁 : '진실한 내면관찰의 중요성'


여러분 안녕하세요~


최근에 제가 현재 즐겨보는 채널 struthless(캠벨 워커)에서 '26주 안에 26 개의 창작물 만들기'라는 크리에이터 챌린지를 열었습니다. 저는 캠벨이 어떤 챌린지를 준비했는지 궁금해서 (그리고 저도 요즘 영상을 조금 더 열심히 올리면 어떨까 생각해서;;) 등록해 봤습니다.


창조하는 데 사람들이 겪는 여러움을 알아보기 위해 캠벨은 커뮤니티 포스트에서 팔로워들에게 다음 질문을 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첫 두 질문이 중요합니다:


1. 창조적인 일을 하는 데 경험하는 가장 큰 정신적 한계가 무엇인가?

2. 주로 어떤 것들 때문에 자신의 창작물을 온라인에 올리지 않는가? 


단 3일 안에 약 3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자기 창조에 대한 어려움을 (나름 성심껏) 올렸습니다. 인간성에 대한 좋은 스터디일 것 같아서 제가 300개의 코멘트들을 모두 다~~ 읽고 가장 핵심적인 9 가지로 정리해 봤습니다.


처음에, 300명의 '창조하지 않’는 솔직한 이유를 읽고 공감할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그저 놀랍기만 했어요. 후기들이 깊은 진정성이 있어서 놀라운 게 아니라, 그 댓글창의 대부분이 자기기만과 자책, 죄책감, 변명, 미묘한 자기합리화 그리고 표면적인 대중 심리학 용어를 얼마나 많이 아는지 자랑하기 위한 배출구였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진정하고 취약한 상태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댓글은 거의 없었어요.


창조를 못하는 사람들의 가장 흔한 9 가지 이유 (가장 많은 빈도수에 따라 나열함):


1. 결정 장애  -  "난 아이디어가 너무 많아서 /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뭐부터 해야 할지 몰라요."

2. 주의결핍 장애(ADHD), 미루는 습관, SNS/쾌락 중독  -  "집중이 안 돼요. 창조하러 앉았는데 자꾸 딴짓(=쇼츠, 게임, 중요하지 않은 일, 놀이, 산책 등) 하게 돼요."

3. 완벽주의  -  "완벽주의가 워낙 심해서 영상/글/그림을 올리지는 못 해요.ㅜ"

4. 판단/평가에 대한 두려움  -  "사람들이 나를 평가하는 게 너무 무서워요."

5. 옛날 성취를 맞추지 못 하는 두려움  -  "옛날에 잘 했는데 그 수준을 지키지 못 할까 봐 새로운 창조를 못 하겠어요."

6. 무기력함, 낮은 자존감, 우울함  -  "하고 싶은데, 힘과 동기부여가 없어요. 자존감이 낮고 자꾸 우울한 감정이 나를 찾아와서 행동하지 못 해요." 

7. 끈기 없음  -  "시작은 잘 하는데 오래 지켜나갈 끈기가 없어요."

8. 알고리듬 탓, 업로드해야 하는 스트레스  -  "잔인한 알고리듬 때문에 탁월한 걸 올리지 못 해서 안 올려요."

9. 부적절함  -  "나와 나의 창조물이 부적절해서 제출하지 못 해요."

 

미안하지만 - 그동안 저 자신과 코칭 고객, 워크숍 참가자를 관찰하면서 자아가 우리를 속이는 사례를 수백 번 봤습니다 - 위의 리스트에서 9번 빼고는 나머지는 다 낮은 의식으로 낸 변명에 불과합니다. 그 사람들이 다 어마한 진정성을 보여준다고 스스로 생각했겠지만, 실제로 자초한 자기기만 뒤에 숨는 겁니다. 1~8 번 이유들은 자기 자신의 진정한 심정을 지나치고 그 설명(변명)을 통해 오히려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두려움의 굴레에 가둡니다.


그것을 명확히 설명하기 위해서 각 이유마다 제 코멘트를 남기고, 잠시 그 사람의 입장에서 훨씬 취약하고 진실된 관조를 예시로 보여드릴게요. 





1. 결정 장애  -  "난 아이디어가 너무 많아서 /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뭐부터 해야 할지 몰라요."


알렉스의 분석: 

불쉿! 객관적으로 바라봤을 때도 이게 얼토당토않은 선언인 걸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아이디어가 많은 게 결코 문제인 적 없어요. 당신은 하고 싶은 게 많아서가 아니라, 한 가지를 실현하고 싶으면 잠시 헌신해서 자기 자신을 노출시켜야 하는 게 문제입니다. 


"아, 일단 피아노곡 하나 작곡할까? 내 작곡 프로세스를 동시에 촬영해서 유튜브에 올릴까? 아니면 블로그로 올리면 조금 더 설명이 뚜렷하지 않을까? 휴~ 오늘 고민 많이 했으니까 여기까지~" 


이런 식으로 매일매일 실제적인 결정+행동을 꺼려하고 자기 상상으로 '잠재력이 많은 천재’의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선택해서 행동하면 자신이 실제로 그렇게 재능이 뛰어나지 않다는 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차라리 매일 잠재력 안에서 자기 자신을 위로하면 마음이 가장 편하고 안전합니다.


더 진실된 관조:

"실은, 프로젝트마다 구체적인 주제를 정하면 되는데, 정하기가 너무 무서워… 내가 선택한 틀 안에서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어떡해? 그때 너무너무 속상하고 내가 실제로 못 하다는 걸 인정해야 할 텐데. 계속 아이디어를 찾고, 고민하고, 정리하면 그래도 뭘 하는 것 같고 내가 잘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늘 열어두고 있어. 그 (가짜) 가능성이 나의 감정적 안정터야. 막상 실제적인 창조물에 헌신하면 내가 실패자인 게 남 앞에서, 아니 나 자신 앞에서 들킬까 봐 결정 장애로 나 자신을 속이는 거야. 그냥 정하면 되는데… 나도 알아 ㅜㅠ"





2. 주의결핍 장애(ADHD), 미루는 습관, SNS/쾌락 중독  -  "집중이 안돼요. 창조하러 앉았는데 자꾸 딴짓(=쇼츠, 게임, 중요하지 않은 일, 놀이, 산책 등) 하게 돼요."


알렉스의 분석:

만약에 진짜로 비정상의 뇌 구조, 뇌 화학, 뇌 도파민 레벨 따위 때문에 임상적인 주의결핍, 활동항진증, 통제할 수 없는 충동성에 앓고 있으면 의학적인 조치를 취하는 걸 권합니다. 


하지만 현재 너무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아니면 심지어 정신과 의사에게도) ADHD라는 진단을 너무나 지나치게 내리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 수업에 나오는 참가자들 중에 단 한 명도 활동항진증과 충동성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들어올 때 대부분 집중이 안되고 자기가 진심으로 원하는 일보다 유튜브 쇼츠, 인스타 릴스, 틱톡에 빠지곤 합니다.


그 이유가 병에 걸려서가 아니라, 그런 즉각적인 방법으로 우리의 책임으로부터 또 잠깐 도망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는, 우리 스스로 못 하고 있다는 사실에 직면하지 않고 다양한 쾌락으로 잠깐 단기적으로 스스로 위로할 뿐입니다. 너무 자주 사용하는 대응기제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습관이 되고 결국 충동적인 형태로 나타날 수 있어요. 그러나 이런 경우, 질병이라기보다 심리적인 패턴에 더 가깝습니다. (미디어 업체들이 우리 취약성을 이용해 그 서비스를 어떻게 디자인해야 하는지 너무나 잘 압니다.)


특히 미국에서 (아쉽게도 더욱더 한국에서도) 얼른 병원으로 뛰어가서 자신이 ADHD라는 진단을 받으면 무의식적으로 오히려 후련합니다. "휴~ 나 행동하고 싶었는데 집중결핍이 있어서 할 수가 없네ㅡ"


더 진실된 관조:

"솔직히 말을 하면, 이런 쾌락에 빠질 때마다 죄책감이 들고, 시간 낭비인 걸 아는데… 그래도 내 일을 위한 작은 배움, 작은 영감, 작은 팁 하나라도 찾을 것 같아서 계속 보고, 또 보고 그래. 근데 뭐…그것도 거짓말이야ㅜ 실천으로 내 얼굴을 보여줘야 되니까 차라리 즉각적인 보상으로 도피하는 거야. 내 아트가 아직 충분히 준비돼 있지 않고 사람들에게 깊은 영감과 가치를 제공하지 못 할까 봐 전전긍긍해. 쇼츠를 오래 보고 남는 이런 찝찝함이 딱 그 두려움인 거지…"







3. 완벽주의  -  "완벽주의가 워낙 심해서 올리지는 못 해요."


알렉스의 분석:

완벽주의자라서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비밀 하나 알려드리겠습니다. 완벽하지 않은 창작물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을 본 적 없습니다. 누구나 탁월한 결과물을 목표로 합니다.


그러면 왜 극소수의 사람들은 행동해서 탁월한 창작물을 만들고, 왜 다른 사람은 완벽주의 때문에 행동 못 하고 있을까요? 그 답은, 창조해서 제출하는 사람은 '완벽주의’라는 핑계 뒤에 숨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완벽주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행동하지 못 하는 건 아닙니다. 아니, 진짜로 완벽주의가 있었다면 미친 듯이 연습하고, 수정하고, 공장처럼 탁월한 창작물을 만들 텐데. 


당신이 행동하지 않는 이유는 완벽주의가 아니라 스스로 부적절하다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결국 뭘 만들든 부족하게 보이고, 그래서 또 수정하고, 또 수정하고… 그 부족함이 노출되기 싫어서 수정에는 끝이 없습니다.


심지어, 더 최악의 경우는 수정을 계획만 하고 대부분의 완벽주의자들이 아예 행동하지도 않습니다. '완벽주의자’라는 이유만으로 이미 스스로에게 과잉 고민만을 하는 특권을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완벽주의자라는 도장을 찍고 행동하지 않는 그 이야기를 끝내버립니다. 


근데, 여기서 '완벽주의자’라는 훈장을 자랑스럽게 달고 돌아다니지 않는 걸 추천합니다. 왜냐면 그건 그저 행동하지 않기 위한 싼 변명밖에 안됩니다.


더 진실된 관조:

"내가 얼마나 패배자인지 내 그림/영상/글을 통해서 들킬까 봐 미쳐버리겠다!! 사람들이 많은 찬사와 칭찬을 보내고, 내 그림으로 얼마나 많은 영감 받았는지 감사를 전해주고 있지만, 난 도저히 못 느끼겠어. 스스로 패배자라고 생각하는 내가 이걸 만들었으니 여전히 다 실패작처럼 보여ㅜㅠ


맞아, 결과물이 문제가 아냐. 객관적으로 보면 이미 너무 좋은 거야. 내 결과물 안에 내가 패배자라는 진실이 들킬까 봐 강박적으로 계속 끝나지 않을 수정작업에 희망을 두는 거야. 무슨 수정…결국 그것 때문에 행동 아예 하지도 않잖아. 완벽주의라는 게 그냥 좋은 변명일 뿐이지. 이 라벨로 나를 행동하지 않는 나를 정당화 시키고 그걸로 나를 규정시켜 버리는 거지."





4. 판단/평가에 대한 두려움  -  "사람들이 나를 평가하는 게 너무 무서워요."


알렉스의 분석:

그러면 좋게 평가하는 것도 무서워요? 아니겠죠! 사람들이 내 창작물 - 이어서 - '나’를 부정적으로 평가할까 봐 행동 안 하는 거죠. 


하지만 이것도 전부가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가 무서운 건, 사람들이 딱 우리의 사실을 들킬까 봐 무서운 거예요! 내 창조물을 통해 내가 얼마나 바보인지, 내가 얼마나 무능한지, 내가 얼마나 무가치한지 - 나에 대해서 이미 믿고 있는 그 달갑지 않은 사실이 보일까 봐 전전긍긍합니다. "남의 시선/평가/판단"이 무서운 게 아닙니다. 스스로에 대한 달갑지 않은 믿음이 튀어나올 까봐 무서워서 행동하고 있지 않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제 개인적인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저는 제 유튜브 댓글 창에 사람들이 "이 사람 한국어 진짜 못 하네!"라는 댓글이 올라올까 봐 무섭지 않아요. 기분 좋지도 않겠지만, 그것 때문에 영상 업로드를 꺼려하는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한국어 잘 한다’의 능력이 제 에고에게 중요한 동일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게 제 축복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사람들이 "에이! 넌 무슨 근거로 이런 거 올리냐?"의 댓글이 올리는 게 너무나 공포스럽습니다! 저는 실제로 그런 댓글을 상상해서 행동을 자주 꺼려합니다. 왜냐하면 나 자신을 바로 '쓸모없는 몽상가’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래 이어서 관조합니다.)


더 진실된 관조:

"남의 평가가 무서울까? 정확하게 어떤 평가? 흠…가장 두려운 건 사람들이 나를 근거 없는, 말만 많은 철학가로 보는 거야. 내 세계관에서는 의사, 로켓 과학자, 엔지니어 같은 사람만이 실제적인 결과물을 내서 생존을 꾸릴 수 있지, 나처럼 형이상학적이고, 지적인 일을 하는 사람은 '굶어야 하는 몽상가’야ㅜ 당연히 사람들의 웰빙과 정신 건강도 너무나 중요한데, 어릴 때부터 실용주의의 중요성을 너무 많이 주입당해서 나는 그 세계관으로 작동하는 거야. 


에이…그것도 핑계야. 과거 탓 하기 쉽지! 내가 현재(!) 쓸모없는, 아무 가치를 나눌 수 없는 몽상가라고 생각해서 이런 반응인 거야. 영상을 충분히 근거 있게 만들 수 없으면 내 사실이 들키고 난 외면당할 거야!"






5.  옛날 성취를 맞추지 못 하는 두려움  -  "옛날에 잘 했는데 그 수준을 지키지 못 할까 봐."


알렉스의 분석:

굉장히 흔한 대응기제입니다. 옛날에 그래도 자기 부족함을 잘 가리고 어느 정도 의 성공과 평판을 이뤘는데, 행동하면 할수록 내 부족함이 들킬 위험이 커지고 결국 스트레스가 더욱더 올라갑니다 . "이번에 제대로 된 걸 못 만들어서 내가 그동안 예쁘게 지어낸 평판을 다 잃으면 어떡해??"


이런 함정에 빠졌으면 1번 결정 장애와 비슷한 대응기제를 사용하게 됩니다. 과거 성공 때문에 스스로 잘 한다는 이미지를 소중히 지키고 있으니까, 현재 그 이미지와 잠재력 안에서 만족하기만 합니다. 왜 또 새로운 창작물을 내서 위험을 감수해야 할까요?


이론적으로 더 행동해야 하는 걸 알지만, 왠지 몸이 안 움직입니다. 차라리 자신의 위대함을 붙잡으며 꿈만 꾸는 거죠. 그것이 나의 유일한 위로입니다.


아쉽게도, 자기 자신을 얼마나 속여도 비밀리에 불안과 자기 실망이 막후에 도사리고 있는 걸 오래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 평판이 오래 가겠지만 어느 날 확실히 희미해지고 결국 들키고 싶지 않은 그 부족한 모습이 되어 있을 거에요. 그래서 늦기 전에 다시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마주봐야 합니다.

  

더 진실된 관조:

"내가 왜 행동 안 하고 있지? 실은, 내가 얼마나 강한지 지난 5년 내 책/채널/블로그를 통해 증명했는데, 이런 다양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나 여전히 약한 아이처럼 느껴져ㅜ 다 가짜였던 거야. 사람들이 절대 내 이런 모습을 보면 안돼!


곧 나를 강하게 보이게 해주는 창작물을 또 올려야 하는데…내가 이렇게 힘없고 초라한 티가 안 날 수가 없잖아! 지금 올리면 사람들이 이게 처음부터 다 파포먼스인 걸 볼 거야!ㅜ 내 평판을 잃을까 봐 너무 두려워. 그래서 내가 자꾸 다른 짓을 하고, 완벽주의를 쫓고, 결국 실천 안 하는 거야."






6. 무기력함, 낮은 자존감, 우울함  -  "하고 싶은데, 힘과 동기부여가 없어요. 자존감이 낮고 자꾸 우울한 감정이 나를 찾아와서 행동하지 못 해요." 


알렉스의 분석:

우리가 모두 사랑하는 무기력! 자기 자신의 부족한 면이 들킬까 봐 공포에 떨면서, 행동하고 싶지 않을 때, 바로 우울한 감정을 생성해 냅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야기 끝!


우울한 감정의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대신 편안한 삶이 보장됩니다. 나도, 남도 나에게 기대하는 바가 없고 내 구슬픔 안에 안주하며 쉬면 됩니다.


장기간으로 이런 대응기제를 사용해서 직접 해낸 창조물이 없어서 자기 신뢰도 슬슬 떨어지고 그다음 단계인 '낮은 자존감’의 라벨을 스스로 씌웁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내 자아에 내 무기력이 견고하게 새겨진 겁니다.


더 진실된 관조:

"맞아. 나 똥줄이 타게 겁이 나. 내가 못 할까 봐, 무능해서 버림받은 아들처럼 보일까 봐 아예 행동을 취하지 않아. 우울하게 방구석에 게임만 하면 난 그나마 안전해. 주변 사람들이 나를 케어하고, 어떻게 하든 살아남겠지. 행동하고 싶은데, 행동하면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고 나를 떠날 것 같아. 그래서 솔직히 말을 하면, 이 우울한 감정을 원하는 거야. 이게 사실이지."


(*이 포인트가 쉽게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에, 더 자세한 설명은 책 <의미 있는 삶을 위하여> P. 458+ 참고해 주세요)






7. 끈기 없음  -  "시작은 잘 하는데 오래 지켜나갈 끈기가 없어요."


알렉스의 분석:

흔한 패턴입니다. 시작은 잘 하는데 노출될 때만 되면 갑자기 마무리를 못 합니다. 아마 또 광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찾아서 주의를 옮깁니다.


창조는 하지만, 80~90%에 멈추면 내가 노출되지 않으니까 내 부족함이 드러나지도 않아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제 스크립트들이 절반만 완성 상태로 잠겨있는지 모르실 거예요. 스크립트 쓰다가 도저히 이걸로는 내 부족함을 가리기 어려우니까, 즉, 내 부족함이 들킬까 봐 결국 '내일 영감이 오면 더 잘 써질거야, 오늘은 그만!' 을 외치고, 그다음 날 그 스크립트를 아예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에 새로운 스크립트를 쓰는 시도를 하죠. 


결국 이것도 똑같은 자기기만입니다. 행동은 한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에 또 두려움으로 자기 재능을 낭비합니다.

이런 식으로 창조를 한다면, 행동할 때 잠시 뿌듯할 수도 있으나 내 창조를 세상과 나누지 않기 때문에 다 무효로 느껴집니다. 물론, 어느 날 제출하겠다고, 또 그 잠재력으로 위로를 받지만 감정의 찌꺼기가 남습니다.


더 진실된 관조:

"실은, 끈기 없는 게 그냥 내재적으로 나한테 문제가 있어서보다 내가 마무리하는 게 너무 두려운 거야. 완성이 다가올수록 내 창조물이 아직 부족한 것 같고, 애를 조금만 더 쓰면 잘 나올 거라고 생각하는데 완벽하게 만드는 게 너무 압도적이야. 그래서 일단 내버려두는 거야. 나태하기 싫어서 다른 거 시작하는데, 슬슬 그전 프로젝트에 대한 인사이트가 떨어지고 몇 주 후에 아예 잊게 되는 거야.


내 결과물을 내지 않음으로써 늘 내가 창의적인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고, 남의 평가에 직면할 필요가 없어. 내가 실제로 못 한다는 가능성에 마주보고 싶지 않지ㅜ"






8. 알고리듬 탓, 업로드해야 하는 스트레스  -  "잔인한 알고리듬 때문에 탁월한 걸 올리지 못 해서 안 올려요."


알렉스의 분석:

뭐, 이건 피해의식 그 자체라서 깊게 다루지 않겠습니다. 알고리듬이 크리에이터 입장에서 완벽하지 않겠지만, 알고리듬이 아니었다면, 불평의 대상은 타인의 기대, 불평등한 계급 사회, 의식이 낮은 문화 수준을 탓했을 거예요.


자기 내적인 문제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고, 스스로를 피해자로 자처하는 행위는 나를 책임으로부터 해방시키고 편안한 삶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체념과 원망이라는 대가가 존재하지만, 그래도 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게 해주기 때문에, 나를 피해자로 만드는 대응기제를 우리가 즐겨 사용합니다. 


더 진실된 관조:

"자꾸 정해진 스케줄대로 나를 노출시켜야 되는 게 싫어!! 난 내 기준대로, 창작물이 완벽할 때까지 더 다듬고 올리고 싶은데… 


근데 맞네ㅜ 마감일 없었으면 아마 아무것도 안 할 거야. 자꾸 두려운 일을 해야 돼서 이렇게 원망스러운 것 같아. 쉴 틈 없이 자꾸 들킬 불안에 사로잡혀서 외부 탓을 하는 거야.


지속적인 번아웃 상태인 진짜 이유는 내가 여전히 쓸모없는 실패자인 것 같아서 그래. 부랴부랴 만든, 완벽하지도 않은 창작물로 사람들이 딱 그 사실을 알 거야. 이런 나의 생각 속에서 알고리듬, 사람들의 기대가 나의 자유를 뺏어가는 것처럼 보여. 근데 실제로 나 자신이 직접 만든 쇠사슬 때문에 자유롭지 않게 느끼는 거지…"





9. 부적절함  -  "나와 나의 창조물이 부적절해서 제출하지 못 해요."


알렉스의 분석: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답입니다! 아쉽게도 가장 진실된 설명은 제일 낮은 순입니다. 위에 모든(!) 설명은 자신의 부적절함이 드러날까 봐, 즉 사회생존을 못 할까 봐의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대응기제입니다 - 즉, 우리 스스로를 속이고 핵심 원인을 가리려는 시도입니다. 


나는 근본적으로 부적절하다 / 바보다 / 쓸모없다 / 가치가 없다 / 버림받은 아이다 / 사회부적응자다 / 무능하다 / 약하다 / 아차적이고 낮은 인간 / 텅 빈 존재 /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 등등등…우리 내면 깊이 존재하는 그 진실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스스로 파봐야 합니다.


우리가 모두 어떤 결핍, 불안정, 자신에 대해 안 좋은 관념, 불안을 지니고 다니는데, 우리 메커니즘은 창조가 초점이 아니라, 오히려 그 결핍을 가리는 데 있습니다. 행동하고 싶은데, 왜 자꾸 투명한 손이 우리 자신을 행동 안 하게 하는 것처럼 느꼈는지 궁금한 적이 없나요? 충만한 삶보다 자신의 개념적 자아생존이 더 중요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창조 + 제출에 성공하고 싶다면 크게 두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이런 자기기만을 그만하고 우리의 깊은 진실을 마주 보고…

 

1. 버리기 

더욱더 깊은 진정성으로 의식을 높여, 나 자신에 대해서 내린 결론이 그저 생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나라는 바보, 무가치한 사람, 부적절한 사람 등이 정확하게 무엇에 기반하는가? 내가 '무가치하다’고 말을 하면 정확하게 뭘 말하는 걸까? 그 특성이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가 - 지금 이 순간 나의 부족함의 실체를 찾을 수 있는가?


처음부터 실제로 내가 부족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으면 그 신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가짜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만 상상하고 별 막힘  없이 행동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수준의 진정성을 이루지 못 합니다. 그래서 두 번째 방법은…





2. 통합하기

신념을 내려놓을 수 없다면 그걸 온전히 인정하고 그만 가리기라도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무가치한 바보라고 해서 괜찮은 창조물을 만들 수 없는 건 아닙니다. 그냥 바보인 나로서 내가 원하는 창조를 만들면 된다. 


이 충고는 처음에 많은 오해받습니다. 나의 결핍을 인정한다고 해서 그걸 일부러 들어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대신에, 그것에 그만 저항하고 그것이 있든 없든 창조할 수 있습니다. '나’라는 사람이 적절하든 말든, 탁월한 창조물 또는 아름다운 삶을 만들면 돼요. 나의 사실과 그만 싸우고 막힘 없이 행동하면 됩니다.


심지어 나의 억누른 면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어마어마한 창의력이 해방됩니다. 내 안의 바보를 인정하면 훨씬 모험적이고 유머가 있는 창조물을 낼 수 있고, 내 안의 무가치함을 인정하면 훨씬 덜 경직되고 여유가 있는 창조물을 낼 수 있습니다.


로버트 프리츠가 (제가 한국어 감수를 맡은^^) 책 <정체성 수업>에서 이 상황을 너무 아름답게 설명합니다.


"위대한 영국 배우 알라스테어 심은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 자신에 대해서 남들이 보기에는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는 결론을 내렸다. 자신이 바보라고 결론지은 것이다. 높은 자존감을 의무처럼 여기고 ‘자신을 사랑하라’는 메시지에 열광하는 이 시대에 그의 결단은 가장 기본적인 가치관마저 거스르는 이단적인 태도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심은 그 결정으로써 새로운 자유를 경험했다. 마치 어깨를 짓누르던 짐을 내려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갑자기 에너지가 몸속을 넘쳐흘렀고, 무엇보다 그때부터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 즉 자기 훈련과 연기의 예술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이 바보라는 걸 인정하고 나자 더 이상 똑똑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가 생각하는 자신, 즉 바보가 될 수 있었다. 이후 그는 영국의 연극계와 영화계에서 가장 위대한 배우로 손꼽히는 사람이 되었다. 그의 가장 유명한 배역은 가장 사랑받는 <크리스마스 캐럴>의 에베네저 스크루지였다." 


마침 우리 자신의 사실을 인정하면 나쁜 것이 따라오지 않고, 오로지 창조를 위한 자유를 얻는 것뿐입니다.



오늘 블로그는 창조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기 위해서 쓴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 분들의 나눔을 통해 우리 모두가 빠지는 함정들을  자세히 분석해서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저 또한 이 모든 자기기만 단계를 경험했고, 아직도 진행 중인 것들도 있습니다!^^ 거의 매주 저 자신을 다시 되돌아봐야 합니다.


만약에 당신도 위의 한두 개 함정에 빠졌다면 그걸 알아차리고, 만약 너무 비효율적이다 싶으면, 그만해도 됩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한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극적 진정성!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야지 그걸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나 자신을 속여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초보자들에게 쉬운 팁을 드리겠습니다. 스스로 솔직해지고 싶다면 "왜 내가 행동 안 하고 있지?"냐고 물어보지 마세요. 이럴 때 주로 싼 자기합리화밖에 안 나옵니다. 대신에 책임을 나에게 돌리는 질문에 가장 진실된 답을 오랫동안 직시하는 걸 추천드립니다:


나는 왜 행동 안 하고 싶은가? 

행동 안 함으로써 어떤 삐딱한 안정을 얻는가? 

행동 안 함으로써 무엇을 숨길 수 있을까?


진정한 아티스트라면 제일 중요한 건: 솔직하세요!


Farewell~

알렉스




말은 쉽지만, 자기 자신을 해부하고 내적으로 자유로워지는 게 너무나 미묘하고 난해한 길입니다. 저는 이게 직업인데도 불구하고, 저도 늘 주의를 기울이고 있고, 그때그때 또 자아의 새로운 자기방해 행위를 발견합니다~^^


만약에 스스로 실천하며 경험적으로 내면의 깊은 탐구를 하고 자유롭고 싶다면 10월에 열릴 의식성장 워크숍 '의식을 올려 온전한 삶 살기’를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현재 1/3의 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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