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알렉스 룽구의 인사이트를 나눕니다.

제 영혼을 크게 깨워 준 소설! - <마의 산>

하이어셀프(HigherSelf)
조회수 656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한 달 동안 독일 작가 Thomas Mann의 작품 <마의 산>*을 읽고 오늘 완성했습니다. 1400쪽을 넘는, 워낙 두꺼운 책이라 20년 동안 읽기를 미뤄왔는데, 막상 읽고 나니 왜 이 책이 세계적인 고전으로 손꼽히는지 알겠어요! 제 영혼의 깊은 곳까지 이렇게 강하게 울림을 준 책은 정말 드물어요. 읽는 내내 저도 주인공과 함께 전체 여정을 다 한 느낌입니다. 너무 인상 깊어서 여러분하고 제 경험을 꼭 나눠 드리고 싶습니다.



*독일어 원본 Der Zauberberg를 읽었는데, 한국어 번역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줄거리를 짧게 요약하자면 -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는 처음에는 자기 아픈 사촌을 방문하기 위해 스위스 산속의 요양소에 놀러 갑니다. 그곳에서 (치료의 목적으로) 입원객들이 그야말로 하루에 네 번씩 밥을 먹고, "수평적으로 눕고", 책을 읽고, 함께 산책해서 철학하며 수다를 떱니다. 

공대를 막 졸업한 카스토르프는 원래 3주만 머물다 새 직장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곧 요양소의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에 사로잡히고, 점점 더 '병자들의 세계'에 동화되어 갑니다.

3주 안에만 카스토르프가 어떤 직접적인 강요 없이도 스스로를 병자의 정체성을 수용해 갑니다. 자신을 점점 무력하게 느끼고, 병자가 되어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받아들입니다. '마법에 걸린 듯' 결국 3주는 7년이 됩니다.






스토리의 천재성은 이것입니다. 한스 코스토르프는 진짜로 자신이 아파서 더 머물러야 한다고 스스로 자꾸 설득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이것이 그저 취업, 책임, 삶으로부터의 도피를 위한 자기기만이라는 게 명백히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병자의 세계'가 독자에게도 서서히, 은밀하게 꽤 매혹적으로 다가옵니다. 읽다 보니 자신도 무의식적으로 한스와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은지, 이미 살고 있지 않는지(!) 스스로 돌아보게 됩니다.


나도 얼만큼 삶의 책임을 피하려고 나약함을 선택할까? 

언제 나 자신을 작고 약하게 만들까? 

나서서 무언가를 시도하고, 실패하고, 남의 시선을 끌고, 거절당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 나도 얼마나 자주 '병자'나 '약자'의 가면을 쓸까? 

얼마나 나의 내면 안에 숨을까? 

언제 행동보다 나태함을 선택할까? 

언제 도전을 꺼리고 그저 아늑함, '대충', 평범함, 쾌락, 자기중심에 안주할까?





요양소 안에서 한스가 역시 굉장히 바쁘게 지냅니다. 매일 토론도 하고, 소풍도 가고, 짝사랑에 빠지고, 책 읽고, 산에서 스키도 탑니다. 그런데 이 모든 행위가 실제 삶으로부터 단절되어 있는 행위들이고, 그저 '비어'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한스는 그 라이프스타일을 내려놓지 못합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한스가 (독자도) 더욱더 지치지만 (스토리가 의도적으로 지루해집니다), 자신이 아직 "치유되지 않았다"며 머물러야 한다는 확신을 되새깁니다. 심지어 의사가 그에게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줄 때조차, 한스는 그 말을 듣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이것이 우리가 결코 자각하지 못하는 우리 자아의 깊은 영역이지만, 독서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집니다. 우리 '요양소'는 게으름과 나태함 ("의지만 있다면"), 쾌락주의, 중독 ("게임 딱 한 판만 더"), 완벽주의 ("조금 더 갈고딱으면"), 분석마비, 끝없는 사색과 공부 ("조금 더 공부/계획하면"), 피해의식과 원망 ("사회와 부모가 나를 망치지 않았으면"), 회의주의, 우울함과 무의미함 ("뭐 어차피 다 의미가 없는데"), 아픔과 무기력 ("일단 힐링 된다면"), 등입니다. 이런 드라마를 거치면서 우리가 굉장히 바쁘게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바퀴가 헛돌기만 합니다. 실제 삶에서는 달라지는 게 없습니다.

우리가 자꾸 힐링 힐링 힐링을 찾느라 바쁘지만, 결국 이것도 새로운 도피일 뿐이라면?




Mann의 이야기가 이렇게 천재적인 이유는 '진정한 자유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우리 스스로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소설 속에서는 병이 종종 '자유를 위한 입장권'처럼 묘사됩니다. 하지만 읽다 보면 이 자유가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내면 요양소 안에 숨는 도피는 결국 '가짜 자유'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저 아래 골짜기, 곧 삶의 현장에 있습니다. 결국, 진짜 자유란 삶이 던지는 모든 도전, 그 어려움 및 가능성 앞에 정면으로 서는 힘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삶 자체를 위한 선택은 이미 온전한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느끼려면 용기가 필요하죠. 결단을 내릴 용기, 책임을 질 용기, 행동할 용기, 심지어 실패할 용기 -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그때그때 내려놓을 용기.



"무엇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무엇을 위한 자유인 거죠!" 




소설은 어떻게 끝날까요? 한스는 7년째 자신의 '마법에 취한 상태'에서 스스로 빠져나 오지 못하지만 바로 그때 전쟁이 발발하고 그는 어쩔 수 없이 (게다가 준비 안 된 상태로) 전쟁터로 나가게 됩니다. 스스로 깨어나지 못해서 결국 운명이 개입해 자신을 현실로 밀어낸 거죠. 책임을 지지 못하면 결국 삶이 대신에 책임을 져줄 거예요.





너무 길고 읽기 어려운 책인데, 만약 철학적인 소설을 좋아하신다면 이 여정을 직접 하는 걸 강하게 추천합니다.^^ 읽지는 않으셔도 제 글로 간접적으로라도 작은 깨어남이 생겼으면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이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요양소에 가두는가? 나는 어떻게 스스로를 홀리고, 속이고, 마법에 빠지게 하는 걸까?

그 유효기간이 지났다면, 너무 늦기 전에, 스스로 일어서면 됩니다.


Farewell~

알렉스



0 0
공백 없이 입력하세요.
카카오톡 채널 채팅하기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