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알렉스 룽구의 인사이트를 나눕니다.

궁극적 의미에 관하여 - 하이어셀프의 철학 심화

하이어셀프(Higher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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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작년 한 해를 거의 전업 아빠로 보내서 활동은 많이 못했지만, 올해는 조금 더 자주 인사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작년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모든 힘을 모아 <내면탐구와 의식성장 온라인코스>를 준비해 왔습니다. 이번 봄 론칭을 목표로 하고, 곧 좋은 소식으로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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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 의미 탐구


철학, 의식성장의 영역에서는 저는 작년에 '보편적 원칙’과 '의미’를 더 깊이 경험적으로 이해하려고 애썼습니다. 하이어셀프의 철학에 큰 업그레이드가 된 것 같아서 제 인사이트를 여러분하고 꼭 공유하고 싶습니다.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인간의 본성과 운명>을 읽다가 한 문단이 저를 깊이 흔들었습니다.



"세계의 질서를 조망하고 보편적 개념을 형성하며 그것을 분석하는 이성적 능력은 ‘정신(spirit)’의 한 측면에 불과하다. 인간은 세계를 인식한다. 그러나 인간이 세계를 인식한다는 것은, 그가 자기 자신과 세계 모두의 바깥에 서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자기 자신과 세계를 넘어서는 관점에서만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있다.

인간 정신의 이러한 본질적 ‘비-정착성(homelessness)’은 모든 [영성]의 토대가 된다. 자기 자신과 세계 밖에 서 있는 인간 존재는, 자기 안에서도 세계 안에서도 삶의 궁극적 의미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유는 자연의 인과적 결정성과는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그는 자연의 인과성 속에 의미를 발견할 수 없다. 또한 인간은 자기 자신의 이성적 과정을 초월하기 때문에, 이성으로도 의미의 원리를 발견할 수 없다. […] 

바로 이 자유의 능력이 위대한 문화와 철학들로 하여금 합리주의를 넘어, 존재의 무조건적 토대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도록 이끈다."


하어어셀프의 언어로 바꾼다면, 의식은 언제나 자신과 세계를 초과하기 때문에 아무 성취도, 아무 이론도, 아무 마음가짐도 우리에게 의미를 줄수 없으며, 장기적으로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 느낌을 너무 잘 알지 않나요? 사회적인 성과들이 나 자신을 정당화한다는 걸 기대하지만, 어떤 성공, 성취, 결과물, 칭찬, 명성, 부, 사치 등이 오래 가지 않고 결국 (우리 경험 안에서) 며칠 후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쾌락, 엔터테인먼트, 인간관계, 안정도 나를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그러면 방향을 바꿔서 외적인 성취보다 의미를 정신적인 이론 안에서 찾습니다: 가르침, 이론, 종교, 사명, 형이상학적인 신념체계 등. 그런데 그 중에도 어떤 것도 종합적인 설명을 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 모르겠지만, 보통 철학을 공부할수록 오히려 모든 것의 상대성을 보게 되고 혼돈이 남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텅빈 개념 또는 유한한 형태에 불과했다는 게 드러나고, 아무 '의미’를 결국 붙잡을 수 없게 돼요. 일상에서 우리가 주의를 실용적인 것에 많이 두고 그걸 해결하느라 바빠서, 이 현상을 주로 무시하지만, 막후에서 우리는 늘 그런 자기의심, 공허함, '더 높은 차원에 가야 한다’는 강박을 지니고 다닙니다.


제 책 <의미 있는 삶을 위하여>에서 저는 바로 실존주의자의 이론을 빌려서, 이런 대안을 제시했잖아요: 

"의미 없는 세상에서 의미 있게 살려면 의미를 직접 만들어야 합니다." 

"삶은 우행이지만, 저는 차라리 즐거운 우행을 보내겠습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정말 정말 솔직하다면, 이 설명도 왠지 꿩 대신 닭처럼 느껴집니다. "절대적 의미가 없지만 그냥 의미 있는 척 하고 살자"는 태도는 자기기만과 어디가 다를까요? 아직 자아적 강박으로 운영된다면 먹히는 대응기제인지 몰라도, 자아의 충동을 넘어 인간을 이끄는 유일한 원리로서는 효과가 떨어집니다. (네, 성장하면서 제 옛날 이론을 재고려하고 있어요)


물론, 유일하게 변치 않는 절대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진리, 의식 자체! 의식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그 안에 자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의식의 향상으로 우리가 더욱더 자유로워지고 쓸데없는 개념적 군더더기를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추구에도 맹점이 하나 있습니다. 의식은 자유를 안겨주지만, 그 자체로는 텅비어 있기 때문에, 일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직접 말해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내면을 잘 해체하고, "나는 (절대적으로) 무엇인가?"를 깨달아도, 의식은 아직도 일상에 '형태’를 입혀주고 선택할 기준을 제공해주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무한한 자유를 누릴지 몰라도 "내 삶을 어떤 의미로 형성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그대로 남아요.


그러는 사이, 그 심야 속에 한참 머물면서 관조하니까, 저는 갑자기 그전에 보지 못했던 현실의 속성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변치 않는 의식은 비어 있지만, 그것은 보편적인 원칙의 형태로 삶에서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물리적 원칙은 자연을 지배하듯이, 실존적 원칙은 인간의 경험을 관통합니다. 실존적인 면에서 명확한 기준이 있는 거예요!





예시


너무 추상적이어서, 예를 들어 이런 보편적 원칙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제가 그동안 이미 많이 알려드린 원칙인데, 이번에는 설명의 맥락만 깊어집니다. 혹시 다른 눈으로 보실 수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사랑, 연결, 포괄, 확장

궁극적으로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의식은 하나이고, 진리는 하나이며, 물질조차도 다 모양만 바뀔뿐 같은 '흙과 물’입니다. 우리는 개념 덕분에 잠시 '개인’으로서 살아가지만, 실제로는 더 큰 하나의 몸 안에 포함된 존재입니다.

문제는 개인 경험이 통제 불가능해지고 우리는 진실과의 연결을 잃었을 때입니다. 그 상태로는 자기도취, 이기심, 불안, 나르시시즘, 강박 같은 현상들이 삶을 지배하기 시작하죠. 그런데 이것들은 본질적인 원리가 아니라, 착각에서 비롯된 결과들입니다.

반대로 진실을 향할수록 오히려 사랑, 너그러움, 연결, 이해, 자비, 연민, 기여 등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사랑은 억지로 짜내는 도덕적 노력이 아니라, 의식이 높아질수록 저절로 나타나는 속성입니다.

자아확장은 결국 사랑의 다른 이름입니다. 자기도취를 넘어 본래 하나로 향하는 과정은 곧 사랑이죠.


정의, 평등

정의는 사랑의 사회적인 형태입니다. 개인 차원에서 사랑이 관계를 맺듯이, 사회나 단체에서 사랑이라는 원칙을 적용하고 싶다면, 정의와 평등이 조장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완화, 온전성, 통합성

우리는 생각 속에서 우리 자신을 너무 쉽게 쪼갭니다. 진짜 나/사회적 나, 부족한 나/돼야 할 나, 참나/에고 등. 몰래 몰래 머릿속에서 하기 때문에 아무 대가가 없는 줄 알지만, 이 행위의 실존적 대가가 어마어마합니다. 자기의심, 내적 갈등, 지기기만, 자책, 변명 속에서 우리는 점점 존재감을 잃는 것이죠.


실제로는, 원해도, 원하지 않아도 나는 언제나 하나입니다. 내적 분열은 그저 개념적 허상이에요. 내 존재는 이미 절대성 위에 온전히 서 있습니다. 가짜로 증명할 게 없습니다.

힐링은 새로운 자신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저 쪼개진 부분을 다시 본래인 하나로 통합하는 과정입니다. 통합성도 똑같이 억지로 애써서 적용하는 도덕이 아니라, 진리와 정렬된 상태입니다. 어쩌면, 사랑과 비교하니까, 진정한 '자기 사랑’이라고 불러도 되겠네요^^


책임, 의도, 자유

원해도, 원하지 않아도 내가 내 모든 (정신적 및 물리적) 행위의 근원에 서 있습니다. 내가 하는 행동은 내가 의도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느끼는 감정, 생각, 내적 부름, 내적 충동으도 내가 의도하는 것입니다. 책임을 회피하려고 해도 여전히 책임을 지고 있는 거예요. 나는 언제나 지금 이 순간 내 선택 위에 서이 있습니다. 선택은 단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영속적인 의도의 흐름입니다.

니버가 말한 것처럼, 의도하는 능력은 인과적 결정성에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의도는 의식에서 나옵니다! 의식은 무한하기 때문에 우리 자유도 본질적으로 무한합니다. 원해도, 원하지 않아도 우리는 온전히 자유롭습니다. 그 진실을 우리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요.


희망

희망은 단순히 긍정적인 미래를 상상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희망은 궁극적으로 선한 존재의 근원 위에 서는 상태입니다. 네, 인간의 이기심으로 서로 많은 고통을 줄 거예요, 사람들이 온갖 망상에 빠져서 현실을 왜곡할 거예요 - 그러나 그 모든 거짓 위에 새워진 모든 것들은 결국 무너지게 되어 있어요.

개념은 스스로 존재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실제 현실 위에 서고 개념을 그만 생성하면 사라집니다. 신비로운 말을 쓰자면 '악’이 사라집니다. 희망은 바로 이 자세입니다: "완벽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서는 바탕은 결국 선하다."


용기

용기는 단지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원칙으로는 용기가 진리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힘입니다. 만약에 올바른 원칙으로 삶을 살아간다면 용기가 있는 거예요. 

자기도취와 심리적 충동에 따르는 건 쉽죠. 강박과 불안, 회의주의와 피해의식에 빠지는 건 식은 떡 먹기죠^^ 하지만 그 흐름을 거슬러 의식적으로 원칙에 맞춰 행동하는 건, 그것이 바로 용기입니다. 어쩌면, 용기가 가장 중요한, 모든 다른 원칙의 전제조건일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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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등 다른 원칙들을 생각나시면 댓글로 나눠주세요~


보시다시피, 이 원칙들은 개념적인 산물을 너머, 현실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보편적’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상황에 놓여 있어도 유효합니다. 영구적입니다.


사실, 이런 원칙이 맞다는 건 우리가 다 이미 알고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걸 그저 윤리, "해야 하는 것", "억지로 따라야 하는 것"으로 오해할 뿐입니다. 저는 역시 하이어셀프 워크숍과 책에서 이런 원칙들을 알려드려 왔지만 그것을 여전히 '유효성’의 렌즈로 보고 있었던 거예요.


하지만 이번에는 저는 여기서 그냥 윤리, 이상, 효과적인 삶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원칙들이 옳다고 '믿는' 게 아니라, 현실의 디자인에 대한 통찰을 나눴습니다. 직접 깨달은 후에 그 힘이 명백히 보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아니라면, 무엇이 우리의 삶의 의미가 될까요? 이 원칙들은 또 '척’하고 개념적으로 만들낸 목발이 아니라, 그냥 맞아서(!) 흔들 수 없는 우리 삶의 토대입니다.


의미는 내가 개념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니라, 현실에 이미 내재된 절대적 의미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평생 개인 경험에서 삶을 살아갈 것이지만, 현실을 극적으로 왜곡해서 많은 고통 속에 살아갈 것인지, 가능한 만큼 진리/의식/현실의 원칙과 맞춰서 (항상 맞춰져 있지만, 왜곡의 차이일 뿐이에요) 자유, 연결성, 끝없는 의미를 경험할것인지, 그 선택은 늘 있어요. 절대 완벽할 수 없지만, 방향은 분명합니다.


저는 이 경험 이후로 상대주의의 혼돈을 완전히 극복했습니다. 매일 매순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고 있어요. 물론,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할지 여전히 나의 자유선택입니다. 나의 강점, 취향, 처하는 상황 등 다 확인해서 그냥 그때그때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일을 구현하면 돼요. 여전히 출퇴근하고, 공부하고, 가족을 돌보고, 돈을 벌고 쓰고, 공동체 참여하면 돼요. 그러기 위해서 여전히 목적, 목표, 자아확장 지도를 활용하면 돼요. 하지만 솔직히 말을 하면, 그건 2차적인 문제입니다. 내가 뭘 하든(!) 온전한 하나로 서서 용기 있게 진실, 사랑, 평등, 책임, 희망의 방향으로 행한다면 그것이 진실되고 의미 있는 삶입니다. 


Q. (지금 내가 접속할 수 있는) 가장 올바른 행동은 무엇일까?

-> 그것을 하면 돼요~


최근에 레오 구라가 이런 글을 올려서, 너무 공감해서 여기서 공유합니다:



"만약 신이 전능하다면, 왜 끝없는 쾌락과 섹스, 자극적인 음식과 다이아몬드 속에 영원히 자신을 빠뜨리지 않을까요?

실은, 이미 그렇게 했습니다. 그것을 영겁의 시간 동안 반복하다가 결국 그것에 질려,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자리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신은 그 모든 것을 다 겪어 봤고, 그 어떤 것도 결코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유일하게 충만함을 준다는 것을 깨달은 겁니다.

신은 끝이 없는 미로 속에서 모든 유한한 막다른 길을 다 헤맨 끝에 유일한 통로를 발견했습니다: 사랑. 사랑을 찾기 위해서 천국과 지옥을 모두 통과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나요? 당신은 무한한 미로 속에서 길 잃은 쥐처럼 계속 달려다니고 있습니다 - 무한한 사랑을 깨달을 때까지.

의식은 자기 자신을 찾기 전에는 결코 쉬지 않습니다. 사랑이 당신을 정면으로 들어닥칠 때까지, 당신은 모든 잘못된 길을 다 가보게 될 것입니다.

왜일까요? 당신이 바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제 어떤 콘텐츠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믿지 말고, (원하시면) 이런 원칙들을 직접 경험하고, 삶에 적용해서 그 효과를 확인해 보세요~


사랑 넘치고, 의미 있는 2026년 꾸려나가시길 바랍니다~


Farewell~

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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