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제 첫 ‘하이어셀프 인사이트’ 글에 환영합니다.^^
우리는 자동적으로 ‘편안함’에 빠질 때가 너무 많습니다. 배달 음식을 시키고, 아이스크림 한 통 들어 넷플릭스를 정주행하고, 다양한 중독에 빠지고… 만약에 작은 일탈을 원하면 인스타 릴스, 틱톡이나 유튜브 쇼츠가 우리가 갈망하는 도파민을 (늘 부족한데도) 제공해 줍니다.
말 그대로 “멋진 신세계”에서 살고 있는데 우리는 행복한가요? 제일 모순되는 건, 우리가 궁극적으로 이런 충동적 라이프스타일을 원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1시간 쇼츠를 보고 찜찜한 느낌이 들지 않은 적 있나요? 단기적 쾌락은 우리를 살짝 위로해 줄 수 있지만, 결국에 오히려 지속적인 불안과 공허만 남습니다. “정신이 멍한 것 같기만 하고 도대체 해낸 게 뭐지?”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인도의 그루인 사드구루에게 다음 질문을 했습니다. “사드구루, 저는 제발 살아 있는 느낌을 받고 싶어요! 도대체 어떻게 삶의 활기를 다시 되찾을 수 있을까요?” 언제나 그랬듯이 사드구루는 웃으며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매일 불편한 것을 해야 한다네! 그러면 살아 있을 거야!” 이어서 말을 합니다. “너는 늘 편하려고만 하지. 다른 말로, 살아 있는 동안 죽음을 연습하는 거라네. 도대체 왜 살아 있는 동안 죽어 있으려고 해? 삶을 살고 싶으면 도전해서 매일 불편한 거 하나라도 해야 한다네.”
- 지혜가 넘치고 삶을 깊이 즐기는 구루이자, 바이커이자, 유튜브 천백만 구독자 넘는 사드구루 -
비슷한 맥락에서 법륜 스님이 다음 질문을 받았습니다. “스님, 저는 죽고 싶어요. 어떤 마음 가짐을 가져야 할까요?” 법륜 스님이 비유를 들려줬습니다. “우울한 사람이 죽으러 밧줄 들고 산에 갔습니다. 밧줄을 나무에 묶고 그걸 목에 거는 순간 - 갑자기 덤불에서 호랑이 딱 뛰어 나왔습니다! 그 사람이 겨우 ‘맙소사 호랑이다!!’ 소리 지르며 간신히 밧줄을 목에서 빼고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도망쳤습니다!” 그 사람이 자기 생각으로 죽을 만큼 우울했는데 실제 삶과 부딪히는 순간 생명 그 자체가 제일 소중하다는 걸을 상기시켜주는 이야기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 인간이 원하는 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세상과의 융합, 도전, 열정, 돌파, 적절한 위험/모험/탐험, 뜨거운 사랑과 초자연적인 성취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깊은 본성을 알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세상과 부딪혀야 하죠! 헨리 소로가 말했듯이 우리가 무엇보다 갈망하는 건 “the wilderness of the heart(영혼의 황야)”입니다. 우리가 승리를 쟁취하고 결국에 어떻게 왕이 되는지 보여주는 영화나 소설에 매료되는 이유는 그 어떤 누구도 자기 충동적 패턴에 쉽게 굴복하며 하루종일 틱톡하는 주인공을 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놓치기 쉽지만, 우리 안락과 편안함 추구가 굉장한 대가를 요구합니다. 공동적으로 용기, 회복력, 탄력성, 헌신, 실천력, 끈기와 결단 같은 상당히 효과적인 원칙을 잃게 되죠. 우리 모두는 단기적 만족의 전문가가 됐지만, 삶의 도전을 마주치는 용기를 잃다 보니 장기적 높은 차원의 ‘영혼 만족’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삶의 접근법을 재고려해야 하지 않을까요?
다년간 성장을 위해 다양한 것을 공부하고 모험하고 탐험한 결과, 새로운 삶의 접근접의 핵심은 이것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불편’과 ‘불행’을 헷갈리면 안 됩니다. 우리는 사회로부터 수십 년 동안 “편안함=행복”이라는 메시지를 주입당했는데, 우리 경험을 비추어 보면 명백히 그렇지 않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맹목적으로 ‘편안함 = 행복’이라는 빈 약속만 쫓고 있나요?
살아있으려면 우리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헌신과 결단력, 열정과 끈기를 다시 배워야 합니다. (특히 오늘날의 과도기에서 이런 원칙들을 안 가질 수 없습니다). 사드구루의 조언은 어느 때보다 적절합니다.
“삶을 살고 싶으면 도전해서 매일 불편한 것을 하나라도 해라.”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쓸데없이 불편함을 찾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오늘날의 ‘자기 한계 뚫기’ 캠페인들은 무엇보다 어리석은 것입니다. 나의 불편함에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불편함을 찾는 게 아니라 나의 목표/목적/가치 추구에 불편한 일이 있을 때 그걸 꺼리지 않을 뿐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조던 피터슨의 문구로 끝내겠습니다:
“세상의 짐을 올바른 곳에 실어봐야 한다. 당신의 어깨 말이다!”
그 짐이 무거울 수도 있지만, 반대로, 당신은 살아 있습니다.
Farewell~
알렉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제 첫 ‘하이어셀프 인사이트’ 글에 환영합니다.^^
우리는 자동적으로 ‘편안함’에 빠질 때가 너무 많습니다. 배달 음식을 시키고, 아이스크림 한 통 들어 넷플릭스를 정주행하고, 다양한 중독에 빠지고… 만약에 작은 일탈을 원하면 인스타 릴스, 틱톡이나 유튜브 쇼츠가 우리가 갈망하는 도파민을 (늘 부족한데도) 제공해 줍니다.
말 그대로 “멋진 신세계”에서 살고 있는데 우리는 행복한가요? 제일 모순되는 건, 우리가 궁극적으로 이런 충동적 라이프스타일을 원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1시간 쇼츠를 보고 찜찜한 느낌이 들지 않은 적 있나요? 단기적 쾌락은 우리를 살짝 위로해 줄 수 있지만, 결국에 오히려 지속적인 불안과 공허만 남습니다. “정신이 멍한 것 같기만 하고 도대체 해낸 게 뭐지?”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인도의 그루인 사드구루에게 다음 질문을 했습니다. “사드구루, 저는 제발 살아 있는 느낌을 받고 싶어요! 도대체 어떻게 삶의 활기를 다시 되찾을 수 있을까요?” 언제나 그랬듯이 사드구루는 웃으며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매일 불편한 것을 해야 한다네! 그러면 살아 있을 거야!” 이어서 말을 합니다. “너는 늘 편하려고만 하지. 다른 말로, 살아 있는 동안 죽음을 연습하는 거라네. 도대체 왜 살아 있는 동안 죽어 있으려고 해? 삶을 살고 싶으면 도전해서 매일 불편한 거 하나라도 해야 한다네.”
- 지혜가 넘치고 삶을 깊이 즐기는 구루이자, 바이커이자, 유튜브 천백만 구독자 넘는 사드구루 -
비슷한 맥락에서 법륜 스님이 다음 질문을 받았습니다. “스님, 저는 죽고 싶어요. 어떤 마음 가짐을 가져야 할까요?” 법륜 스님이 비유를 들려줬습니다. “우울한 사람이 죽으러 밧줄 들고 산에 갔습니다. 밧줄을 나무에 묶고 그걸 목에 거는 순간 - 갑자기 덤불에서 호랑이 딱 뛰어 나왔습니다! 그 사람이 겨우 ‘맙소사 호랑이다!!’ 소리 지르며 간신히 밧줄을 목에서 빼고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도망쳤습니다!” 그 사람이 자기 생각으로 죽을 만큼 우울했는데 실제 삶과 부딪히는 순간 생명 그 자체가 제일 소중하다는 걸을 상기시켜주는 이야기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 인간이 원하는 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세상과의 융합, 도전, 열정, 돌파, 적절한 위험/모험/탐험, 뜨거운 사랑과 초자연적인 성취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깊은 본성을 알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세상과 부딪혀야 하죠! 헨리 소로가 말했듯이 우리가 무엇보다 갈망하는 건 “the wilderness of the heart(영혼의 황야)”입니다. 우리가 승리를 쟁취하고 결국에 어떻게 왕이 되는지 보여주는 영화나 소설에 매료되는 이유는 그 어떤 누구도 자기 충동적 패턴에 쉽게 굴복하며 하루종일 틱톡하는 주인공을 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놓치기 쉽지만, 우리 안락과 편안함 추구가 굉장한 대가를 요구합니다. 공동적으로 용기, 회복력, 탄력성, 헌신, 실천력, 끈기와 결단 같은 상당히 효과적인 원칙을 잃게 되죠. 우리 모두는 단기적 만족의 전문가가 됐지만, 삶의 도전을 마주치는 용기를 잃다 보니 장기적 높은 차원의 ‘영혼 만족’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삶의 접근법을 재고려해야 하지 않을까요?
다년간 성장을 위해 다양한 것을 공부하고 모험하고 탐험한 결과, 새로운 삶의 접근접의 핵심은 이것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불편’과 ‘불행’을 헷갈리면 안 됩니다. 우리는 사회로부터 수십 년 동안 “편안함=행복”이라는 메시지를 주입당했는데, 우리 경험을 비추어 보면 명백히 그렇지 않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맹목적으로 ‘편안함 = 행복’이라는 빈 약속만 쫓고 있나요?
살아있으려면 우리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헌신과 결단력, 열정과 끈기를 다시 배워야 합니다. (특히 오늘날의 과도기에서 이런 원칙들을 안 가질 수 없습니다). 사드구루의 조언은 어느 때보다 적절합니다.
“삶을 살고 싶으면 도전해서 매일 불편한 것을 하나라도 해라.”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쓸데없이 불편함을 찾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오늘날의 ‘자기 한계 뚫기’ 캠페인들은 무엇보다 어리석은 것입니다. 나의 불편함에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불편함을 찾는 게 아니라 나의 목표/목적/가치 추구에 불편한 일이 있을 때 그걸 꺼리지 않을 뿐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조던 피터슨의 문구로 끝내겠습니다:
“세상의 짐을 올바른 곳에 실어봐야 한다. 당신의 어깨 말이다!”
그 짐이 무거울 수도 있지만, 반대로, 당신은 살아 있습니다.
Farewell~
알렉스